[ESSAY] 내 가슴을 파고든 그 울음소리들 ★수필2

[ESSAY] 내 가슴을 파고든 그 울음소리들

  • 백형찬 서울예술대학 교수
  • 력 : 2010.03.11 02:48 / 수정 : 2010.03.11 08:33

예술대학으로부터 합격전화 받았을때
기뻐하는 연기를 하라는 문제에
한 여학생은 어깨를 들썩이며 울기 시작했다
나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어려운 환경에도 예술가를 꿈꾸는 탈북여학생에게 장학금을 주었다
그 여학생은 장학금을 받는날 하염없이 울었다

지난 학기에 '예술과 교육'이란 수업을 진행했다. 문화예술 선진국인 영국·프랑스·독일에서의 놀라운 예술교육 현장을 영상물로 보여주었다. 기말고사 문제로, 자신이 그동안 받은 예술교육에 대해 비판하라고 했다. 시험지를 채점하다가 정말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실용음악과에서 노래를 전공하는 여학생이 작성한 답안지였다. 답안지에는 다음과 같은 '끔찍한' 사실이 적혀 있었다.

"불과 6년밖에 되지 않은 인문계 여고에 1회로 입학해서 어렵게 졸업했습니다. 선생님들은 예술을 하겠다는 나를 골칫덩이로 여겼습니다. 밤 11시까지 야간자율학습이어서 음악학원에 가지도 못했습니다. 부모님이 찾아오셔도, 내가 아무리 부탁을 해도 절대 안 되었습니다. 한번은 쉬는 시간에 화성학(和聲學)을 풀고 있는 나를 몽둥이로 내려치며 '이딴 거 집어치우고 공부나 하라'고 하였습니다. 교무실로 불러 얼굴을 볼펜으로 찍으며 '네가 서울예대 간다고? 꼴값을 떨어'라고 말하는 선생님까지 있었습니다."

답안지를 읽다가 빨간 펜을 든 손이 부르르 떨렸다. 제자를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학대할까. 해맑았던 그 학생 얼굴이 떠올랐다. 우리나라에서 예술을 공부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답안지가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문득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닐은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만 진학시켜온 명문고등학교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은 바로 연극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내 인생 처음으로 내가 뭘 원하는지 알아냈다"고 소리쳤다. 아버지는 닐이 명문대학을 나와 의사가 되길 바랐다. 아버지는 연극을 하는 닐을 군사학교로 전학시키기로 결정한다. 그날 밤, 닐은 부모가 모두 잠든 사이에 아버지 책상서랍에서 권총을 꺼내든다. 총소리를 듣고 달려온 아버지가 죽은 아들을 보고 통곡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도 그 장면에서 울었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얼마 전 입학시험 때의 일이다. 직책이 입시를 총괄하고 있는 교무처장이라 연기과 실기시험장에 들어가 전형 진행 상황을 살펴보고 있었다. 경쟁률은 무려 100 대 1이었다. 스튜디오 속의 열기는 무척이나 뜨거웠다. 한 여학생이 들어오더니 대본에 주어진 상황연기를 하기 시작했다. 합격통보를 전화로 받았을 때 그 감정을 연기로 표현하라는 것이 문제였다. 그 학생은 감정을 잠깐 가다듬더니 연기하기 시작했다. 학교로부터 합격전화를 받았을 때부터 어쩔 줄 몰라 기뻐 날뛰는 모습까지. 정말 우리 대학에 '합격한 것처럼' 연기를 하였다. 얼마나 예술대학에 들어오고 싶었으면 저런 애절한 연기를 할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그 여학생은 연기를 다 끝내고는 바닥에 주저앉아 어깨를 들썩이며 울기 시작했다. 울음소리는 점점 커졌다. 사람들의 가슴을 파고드는 울음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예술대학의 경쟁률은 매년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다. 보통 수십 대 1이다. 우리 대학뿐만 아니라 다른 예술대학도 마찬가지다. 순수예술이건 대중예술이건 치열하기는 마찬가지다. 올해 서울예술대학 입시에서 가장 높은 경쟁률을 기록한 학과의 전공은 실용음악과 노래전공이었다. 경쟁률이 무려 360 대 1이었다. 더욱 놀라운 현상은 예술고 출신보다는 인문고 출신의 예술대학 진학률이 무척 높다는 것이다. 우리 대학의 경우, 인문고 출신의 비율은 무려 90%를 육박한다. 반면에 예술고 출신의 비율은 6%도 안 된다. 그 힘든 예술가의 길을 가겠다는 학생들이 우리나라에는 이렇게도 많다.

예술대학에 입학하기도 어렵고, 들어와서 학업을 지속하기도 어렵다. 적지 않은 학생들이 경제적 사정으로 휴학한다. 목숨을 걸고 고기잡이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가기도 하고, 어깨에 벽돌을 잔뜩 짊어지고 가파른 공사장 계단을 오르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등록금을 마련하면 다시 복학하여 공부하다가 또 돈이 없으면 휴학을 한다. 휴학하는 학생들이 최근 부쩍 늘고 있다.

얼마 전에 우리 대학 교직원들이 '불꽃장학금'이란 것을 만들었다. 봉급에서 얼마씩 떼어내어 예술가의 꿈을 잃지 않는 가난한 학생들에게 불꽃을 지펴주기 위해 만들었다. 첫 번째 장학금은 북한에서 온 한 여학생에게 수여했다. 정말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예술가의 꿈을 잃지 않고 매진하고 있는 모습에 교직원들이 감동하여 등록금 전액을 만들어 주었다. 장학금을 전해주던 날, 그 학생은 야구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와서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대학의 노력만으로는 예술가를 꿈꾸는 학생들의 꿈을 실현해 줄 수 없다. 정부와 사회가 함께 도와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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